성호경에 내려진 은총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간신히 일을 마쳤다. 지친 팔다리를 이끌고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막차 시간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지갑을 꺼내서 표를 사려고 보니 몇 푼밖에 안 보인다. 큰일이다. 이일 저일 보면서 쓰고 남은 잔돈까지 모두 모아보니 정확하게 차비뿐이었다. 표를 사고 나니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새벽같이 일어나 첫차를 타느라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온종일 헤매다보니 식사를 잊어버렸다.

  이를 어쩌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도둑이 따로 없다더니 정말 무엇이든 훔쳐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다. 안되겠다. 우선 살고 보자. 앞 뒤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들어간 곳은 설렁탕 집이었다. "뭐 드시겠어요?" "예? 아, 설렁탕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가슴은 쿵쿵 방망이질을 한다. 어쩌면 좋단 말이냐 천주교 신자로서 무전취식은 안되겠고 그렇다고 현금은 한푼도 없는데……. '먼저 말을 해야하나? 먹고나서 이야기해야 하나? 아니면 주민등록증을 …….'  "맛있게 드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설렁탕이 앞에 놓였다. 비장한 각오로 의젓하게 성호경을 긋고 식사전 기도를 올렸다.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어떡하면 좋으냐? 그렇게도 배가 고프고 입맛이 동했는데 이젠 소태 맛이요, 그야말로 모래알 씹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배는 고파 억지로 꾸역꾸역 쑤셔 넣는다.

 "여보세요, 형제님! " "아, 예? " 피가 거꾸로 솟는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부드러운 그 분의 음성이 들린다. "천주교 신자지요? 반갑습니다." "아, 예에. " 엉겁결에 손은 잡았지만 정신이 없다. 그 손님은 성호경 긋는 내 모습을 보았나보다. 하지만 그게 문제인가. 주인의 인상을 살피니 어쩐지 내 사정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분일 것 같다. 수저를 막 놓는 순간 다가오는 종업원 앞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엉겁결에 설렁탕 그릇을 붙들며 "아직 돈이 준비 안되었는데요." 하자 "예? " 하며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때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손님, 조금 전에 나가신 친구 분이 손님 몫까지 계산하셨는데요." 하고 주인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말한다. "예??……" 그 순간 두 볼 위로 구르는 액체를 느끼며 성호경을 그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물론 신용카드가 있는 요즘얘기는 아니지만 어느 피정에서 들은 가슴 뭉클한 이 이야기를 모임에서 했더니 한 후배가 "형님, 천주교 신자들 정말 다 그런가요? 나도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은데요." 한다. 그윽한 하느님이 평화가 넘친다.

                                                                                                        윤 영 근<요한보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