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에서 만나 뵈온 주님

 

   "하느님은 내게 벌을 내리지 않으셨나니 나의 병고가 하느님의 방문이 되었기에 나는 그 분을 찬미하노라."고 기도했다는 어느 나병 환자의 애절함에서 하느님 사랑의 극치를 실감해 본다.

  하느님의 방문! 주님과의 만남!

  육신이 성한 나는 여태껏 그 분의 숨결 속에 살아왔으면서도 그 분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젖어 있었다. 주님과는 바오로 사도처럼 어떤 빛으로, 또는 사무엘이나 노아처럼 음성으로, 아니면 모세처럼 떨기 불꽃이어야 뵙게 되는 걸로 잘못 생각해왔다. 그래서 주님을 체험했다는 교우들의 신앙고백을 접할 때마다 왜 나는 이렇게 외면하시느냐고 주님을 채근하고 보채며 초조함 속에 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 이번 기회에 주님을 꼭 만나 뵙고 거창한 어떤 계시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대감으로 극적인 주님과의 상봉을 갈망하며 지도 신부님들의 강의와 친절한 안내로 묵상과 기도 속에 3박4일의 전 과정을 열심히 참여했건만 주님은 또 외면(?)하시고야 말았다. 아니 나는 성대의 떨림으로 들려오는 어떤 음성을, 어떤 표징을, 세속적인 귀로만 들으려고 고집했고 감각기관의 말초신경을 통해서만 느끼려고 끙끙대고 있었다. 그리하여 피정을 마감하는 마지막 묵상까지도 더욱더 나를 초조하게 했다.

   '또 뵙지 못하고 가야하나 보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오로지 당신의 종이고 싶습니다."

   "------"  

  그 분은 내 이성을 일깨워 주셨다.

   '자, 네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 삼라만상에서 피조물 속에서 나를 느끼도록 해보라. 너희는 석고로 빚어진 성모님의 속눈썹에 맺힌 이슬을 보려고, 어느 분의 손바닥에 나타난 상흔을 보려고 수백 리, 수천 리는 달려가면서 너희의 눈앞에 내미는 가난뱅이의 손바닥은 들여다 볼 줄 모르는가? 너희와 허물없이 사귀고 싶어하는 형제들의 목소리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감지해 보라. 너희는 환상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려고 부질없는 시간을 허송치 말라.'

 기어코 회한의 봇물은 터지고야 말았다. '아! 그렇습니다. 주님! 어느 것 하나라도 주님의 시야를 벗어나 존재하리이까? 저는 여태껏 교만과 아집과 자기 연민의 가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끙끙대고 있습니다. 가장 신실한 양 뻔질나게 성당을 드나들면서 주님의 현존도 순간순간 망각하며 고귀함을, 성스러움을 흉내내며 위선으로 포장해 왔습니다. 아직도 기초적인 신앙에서 맴돌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자애로운 손길로 내 등을 토닥이시는 주님을 의식했다. 너무도 분명하게 그 분은 내 아픔을 감지하고 계셨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토마의 불 신앙을 능가하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주여 왜?'를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지 못하고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채근하며 왜 나만을 외면하시느냐고 칭얼대며 살아왔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은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지금 이 고백은 당신의 이끄심 임을 믿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28:20)는 주님의 말씀을 새기며 살겠습니다."
                                                                                               윤 영 근<요한보스코>